나는 현재 내 삶에 불만족이다.
더 나아가고 싶다거나, 더 훌륭하게 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내 내면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다.
공부. 지긋지긋한 공부. 언제부터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종용. 선택. 필수. 끊임없는 압박 속에서 나는 공부만을 해 왔다.
다른 사람과 제대로 interaction 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군상은 (비록 그들이 다른 면에서는 훌륭하신 부모님일지라도) 내 안에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집착. 종용. 몰아붙이기. 겉으로만 관대하고 실로는 편협한 생각이 나의 많은 부분을 좀먹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십 여년을 쌓아온 공부는 나를 그저 '적당한 곳'에 있게 만들어주었다. 뿌리가 있는 튼튼한 곳이 아닌,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해고 이겨내야 하지만 잃기에는 아까운 그런 어중간한 곳에 나는 위치해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과의 사회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나는 안타깝고 부끄러운 실수들의 연속으로 어느샌가 지금의 위치로 '휩쓸려 온' 것이었다.
물론 그 탓을 모두 타인으로는 돌릴 수 없다.
결국 가장 큰 요인은 나의 '무기력증'이다.
이 중력과도 같은, 늪과도 같은 힘이 나를 지속적으로 옭아멘다. 아니, 옭아멘다고 느낀다.
나 자신을 바꿀 수 있음에도 항상 하던 데로, 본능이 원하는 데로만 하는 나의 안락하고도 비참한 삶.
이 삶 자체와 그걸 나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하지만, 그 우울이 오히려 무기력의 연료가 되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고 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대학교 초반 2년,
가장 푸르러야 할 2년을 갉아먹은 나의 고백이다.
최근 이런 몽상들에 빠지게 되었다. 누구나 몇 번씩 해보았을, 그런 몽상이다.
"내가 그때의 시간들로 돌아간다면, 움추리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 잘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된다. 아쉽다. 돌아갈 수 있다면..."
꽤나 이전부터 생각해오던 다중 우주(세계선)에 대한 줄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위와 같은 생각을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 보았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원래의 우주에서 튕겨져 나가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이 결국에는 자신의 원래 시간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튕겨져 나가기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계속 생각을 해 보니, 중요한 시사점이 하나 생겼다.
'왜 시간여행을 한다면 시간여행을 하는 자신은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보통 시간여행에 관한 매체를 보면, 시간여행자는 특정한 장소나 기계 내부에서 변하지 않으며 그 외부의 환경들만 시간이 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럼 반대로, 그런 장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계 전체를 과거로 돌리는 것만이 물리학적으로 가능하다면?
당연히 주인공도 그 당시 그 상태로 되돌아가고, 모든 것이 되돌아 가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바뀌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것도.
물론 미시 세계에서 모든 것은 무작위로 일어나므로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무한대의 다중 우주 중 한 개일 뿐이다.
그러한 일들은 원래 일어난다.
즉, 계를 과거로 보내는 버튼을 눌러도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우주에서는 영원히, 영원히 목적지인 과거의 시간 A와 버튼을 누르는 시간 B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의식할 수 없다. 시간이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어도 모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시간 여행이 과거를 바꾸는 방법이라는 말에 무색하게도, 시간여행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그러한 시간 여행기는 작동하건 작동하지 않건 결과가 완전히 똑같다.
계 내에 존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간 여행기가 작동하는지 결코 알 수가 없다.
재미있지 않은가?
이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이걸 이야기로 풀어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나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아주 쉬운 연상을 해 내었다.
아무리 과거에 고통스러워 해도, 과거를 바꾸고 싶어해도
과거를 바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시간 여행기가 있다고 해도,
진행된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변경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바꿀 수 있는 건 단 하나.
지금이다.
현재. 지금. Now.
미래의 내가 그토록 바꾸고 싶어하는, 그 시점이다.
미약하고 움추러든, 그러나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아름답게, 훌륭하게, 원없이 살아갈 수 있는.
무한대로 있는 우주, 수많은 시간대 중에서 유일하게 그럴 수 있는 시간.
내가 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뿐이다.
이 결론이 나를 힘차게 만들고, 북돋아주고, 일으켜 세우고, 힘에 젖게 만들었다.
무수히 들은 이 말, 현재를 살으라는 이 말이 지금보다 더욱 와닿은 적이 없었다.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준 것은, 누구의 말이나 글, 행동이 아니라 바로 내가 생각해서 직접 도달한 이 논리이다.
비록 나중의 내가 본다면 유치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당연한 소리를 왜 저렇게 하고 있나도 싶겠지만,
나의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 이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주 늦었음을,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함을.
미래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도 알았으면 좋겠다.
Carpe diem,
Because I can.
내가 나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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