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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며

예수병원 정신건강의학과 3-5일차 후기

by Alternative_ 202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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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정신과)에서의 일주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좋은 시간은 빨리 간다고 했던가. 마지막 협진코스를 마치고 휴게실에 놔두었던 짐(그래봤자 충전기뿐이지만)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었다. 별안간 짝턴이었던 가관의대 형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이제 여기 다시 오긴 힘들겠네."

그 순간, 알 수 없는 상실감에 나는 손을 잠시 멈추고 말았다. 


정신과 폐쇄병동에 있으면서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즐거웠던 일들도 사소한 일들뿐이었다. 그저 오늘 기분이 어떠시냐고, 잠은 잘 주무셨냐고, 식사는 하셨냐고, 불편한 건 없으시냐고 묻는 것. 그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뚱하게,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며, 또 누군가는 웃으며 대답하는 것. 환자분께 탁구 같이 치겠냐고 묻는 것. 나보다 잘 치는 환자들을 보고 경악하는 것. 어제는 무표정으로 누워만 있던 할아버지와 오늘은 즐겁게 젊은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 것. 

다른 과 서브인턴을 한 사람들이 말하는 숨막히고 멋있는 무용담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그런 일들만이 있었다.

나는 그런 일들이 못내 사무치게 그립다.


휴게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할머님이 사이클을 천천히 돌리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옆방 노인분의 보호자분이 누군가와 즐겁게 통화하고 있었다. 나와 동갑인 분이 아저씨와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눈으로 찍어 두었다.
나가면서, 환자분들과는 평소처럼 인사했다. 차마 오늘을 끝으로 간다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환자분들에게 감정변화를 주기 않기 위해서였을까, 내 감정을 담아두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이기적이었다.


[예수병원 서브인턴 프로그램 전반]
앞에서 말했듯, 예수병원 서브인턴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를 정말 잘 챙겨주었다. 새로 리모델링을 끝낸 방에는 커튼과 세탁기, 청소기 등 필요한 물건들이 완전히 새 것으로 하나하나 추가되었다. 바쁘신 레지던트 선생님들과 과장님들이었지만, 누구도 우리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넘기지 않았다. 다른 과의 경우, 과장님이 오프를 내셔서 서브인턴 학생들을 가르치셨다고 한다(!). 자신이 의지가 있다면, 배움의 기회를 가지기에는 좋은 선택지이지 않을까 한다.


[최종적으로 느낀 정신과 서브인턴 프로그램]
(아직 실습을 돌지 않은 본과 2학년 학생의 글임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정신과 과장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 인턴 선생까지 전부 우리를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었다. 물론 전 글에서 이야기했듯 회진시간과 응급실 콜, 외래 협진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해야 했다. (주로 환자들과 라포 형성, 그리고 관심있는 환자들에 대해 추가적으로 문진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에서는 최대한 우리를 배려해주고 가르쳐주시려는 게 보였다. 과장님들은 아침 외래가 있으셔서 바쁘실 텐데도 우리에게 질문이 없느냐고 계속 말씀하셨다. 인턴과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우리의 추가 질문, 공부해보면 좋은 점들, 환자와의 면담과 라포 형성에서 도움이 될 부분들을 잘 설명해 주셨다. 시간이 남으실 땐, 다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러나 마우 궁금했던) 질문들도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시면서 유익한 정보들을 알려 주셨다. PK도 시작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그 모든 게 큰 도움이 되었다.

환자분들은, 적어도 내가 있는 기간동안은, 굉장히 유순해 보이셨다. 서로 반목도 없고, 의료진에게 순응도도 굉장히 좋았고, 다들 증세가 굉장히 완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셨다. 다른 폐쇄병동에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문제가 꽤 적었던 편이었다. 레지던트 선생님 왈, 가장 증세가 현격하고 치료도 힘든 PD(인격장애)환자분들이 공교롭게도 한 분도 없으셔서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곳의 병동이 폐쇄 병동이 아니라 반폐쇄 병동이라는 점도 한몫한다고. 무언가 큰 사건이 벌어질 것에 대한 마음의 대비(?)를 단단히 한 나로서는 안심, 또 안심이었다. 배움의 범위가 좁아졌다는 점에서는 아쉽지만, 그런 케이스는 PK때 우리 학교 병원의 폐쇄병동에서 접할 기회가 분명히 있을 테니.
아침회진, 회진 후 회의, ER콜, 협진 시간은 모두 굉장히 유익했다. 회진과 회진 후 회의에서는 임상에서 면담을 하고 정보를 청취하는 흐름, 의사결정의 과정, 그리고 환자/보호자와의 상호작용을 전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특히 의사결정의 과정에서 진단, 처방,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부분에서 배웠던 지식을 상당히 활용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관점도 배울 수 있어서 신선했었다. ER콜과 협진 시간은 레지던트 선생님과 함께 외래에서의 정신과의 모습을 일부나마 체험할 수 있던 시간이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들이 전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위 묵직한 질문이어서 대답하고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지식체계를 적절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


[기타 이야깃거리]
병동의 분위기가 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신과 병동이고 환자들이 있으니 기본적인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정신과 면담의 주의점이나 특정 질환에 대한 주의점을 잘 알아가도록 하자. 예를 들어, 한 불안장애 환자분은 새로운 사람인 우리가 회진을 돌 때 같이 참여하였더니 나중에 우리들 때문에 솔직하게 이야기를 못 하였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일을 예상하기는 힘들지라도 대응은 눈치껏 잘 해야 한다.
아침 회진을 돌기 전 준비를 하자. 환자 리스트를 뽑아 아이패드에 정리해 두자. 처음에는 간호사분들께 정중히 부탁드리고, 이후에는 OCS의 사용법을 익혀 활용하자.
예수병원에서 전주 한옥마을까지는 걸어서 약 10-15분 거리로, 점심시간이 1시간 반 이상이 된다면 충분히 한옥마을 인근의 맛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도보로 갈 수 있었다. 2시간을 꽉 채우는 경우 후식도 가능할 정도. 맛있는 집이 정말 많으니 다양하게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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