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한테는 기대된다고 말했지만 실은 긴장도 많이 했었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타향살이에는 익숙해졌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은 오랜만이었다. 3주의 방학 중 2주를 서브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한 건 지금 생각해도 맞나 싶긴 하다. 룸메였던 경북의대 형도 처음엔 "나도 본2때 할 걸 그랬다."고 하다가 방학이 3주란 소리를 들으니 "나라면 안 했다."라면서 웃으셨다. 후회가 없다?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 시점이 아니다. 확실한 건 가만히 집에 있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찝찝함과 안락함에 또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반복은 이제 바라지 않는다. 그 하나만으로도 전주의 숙소에 누워있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다.
[예수병원 서브인턴 프로그램 전반]
예수병원은 서브인턴 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 있어 최선의 대우를 한다. 다른 서브인턴 프로그램을 아직 하지 않아 확답할 수는 없으나, 새로 리모델링을 한 병원 3분거리 아파트를 숙소로 배정하고 세끼 밥을 제공한다는 점, 그리고 담당자분과 즉각적으로 피드백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이미 꽤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교육을 받으면서도 비용 지출이 0에 수렴한다(실제론 수많은 전주 맛집의 공세에 0 비슷한 수치도 나오긴 힘들다). 거기에다 학생의 편의를 많이 봐 주고, 다소 무리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요구까지 최대한 들어주려고 하시는 게 보인다.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모든 걸 물어물어 알아야 하는 여러 대학생 상대 인턴 프로그램과 온도차가 크게 느껴진다. 이런 게 예수님의 사랑인가 싶다.
[2일차 현재까지 느낀 정신과 서브인턴 프로그램]
정신건강의학과 서브인턴 프로그램은 정신과의 QoL을 반영하듯 상대적으로 널럴한 편이다. 아침 회진을 마치고, 가끔 있는 이벤트성(?) 응급실 참관과 치료프로그램 참관을 제외하면 방임교육에 가깝다. 물론 과장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시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당황스럽지 않은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월요일날에는 방임에 적응되지 않아 상당히 어색했으나, 곧 짝턴(같이 인턴을 하는 동기를 말한다)과 환자들과 함께 어우러져 스몰토크와 탁구를 즐기고 있었다. 레지던드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면담'을 해보라고 하시는데, PK를 돌지 않은 우리에게 면담? 랍뽀쌓기도 힘들다. '면담'이 정확히 어떤 의학적 행위를 말하는 건지도 알기가 힘들었다. 룸메 형이나 아산병원 선생님께 여쭤봐야겠다.
이틀차가 되니 어떤 환자분이 편하고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고, 어떤 환자분이 본과의 역량을 벗어나는 지 알 수 있었다. 친화력 좋은 사람이 부러울 따름이다. 방임주의가 첫날에는 약간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둘째 날에는 인턴 선생님과 친해져 OCS 사용법을 배웠다. 환자 병력과 처방력을 아니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레지던트 선생님께 일일히 여쭤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덕분에 질환 공부와 생물학적 치료 공부는 여유시간을 이용해 후루룩 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배운 정신과라 그런지 재학습이 꽤 빠르게 되는 편이었다. 물론 공부하다가 탁구 치는 소리나 수다소리가 들리면 뛰쳐나가는 식이긴 했지만.
여기까지 보면 대략 감이 잡히겠지만, 나처럼 정신과에 관심이 있거나 실습을 돌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는 사람에겐 추천하지만, 명확한 목적이 없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 불리는 병동 내 휴게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방학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본인도 적응하지 못한 1일차엔 그럴 뻔했다.
[기타 이야깃거리]
탁구는 정신건강의학과 실습이나 인턴일을 한다면 필수로 배워야 할 종목(?)이다. 상대적으로 차지하는 면적이 좁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인지 거의 대부분의 정신병동에는 탁구대가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궁금했던 부분이라 여러 모로 검색을 해봤지만, 뾰족한 사유(?)는 알 수 없었다. 중학교때 탁구를 쳤던 사람으로서 반가운 일이었지만, 탁구를 못 치는 짝턴 형은 조금 아쉬워했다.
병원 내부 전체를 아우르는 와이파이가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적인 편이라 공부나 웹서핑, 영상 시청에는 문제가 없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아이패드로는 접속은 되나 인터넷이 되지 않는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와이파이로 인터넷 테더링' 기능을 사용해야 한다. 재미있는 점은 2021년 동계 기준으로 숙소에는 와이파이가 없다(...) 밤에 유투브를 봐야 잠이 오는 스타일이라면 병원에서 다운받아 가자.
병원 구조가 여느 대형병원이 그렇듯 복잡하다. 규모도 꽤 되는 편이니 전날 주요 장소들은 한 번씩 확인해 숙지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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