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어느 날이다. 푹푹 쪄대고, 공기는 약간 습해 땀이 흘러내리는 그런 날이다.
나는 가방 하나를 메고 있다. 항상 메던 백팩이 아니라, 커다랗고 시커먼 운동 가방이다. 아직은 타지 않은 내 피부와 비교된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면, 뻗어나가는 아스팔트길에 인도가 양쪽에 있다. 인도 옆에 심어놓은 나무는 그 이국적인 모습으로,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길은 앞으로 쭉 뻗어 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앞에는 하늘만이 있을 뿐. 더 이상 어디를 보든 보이는 산은 없다.
통장에는 50만원이 남아 있다. 나머지는 편도행 비행기표에 전부 써버렸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값은 50만원을 훌쩍 넘긴다. 50만원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 한국 통장의 한국 돈을 뺄 수 있기는 한 걸까.
숙소는 정하지 않았다. 휴대폰은 로밍 모드로 들어갔지만, 데이터가 되지 않는다. 가방 속에서는 속옷들과 칫솔, 비누 등등이 알맞게 익어가고 있었다.
언제 돌아가냐고? 일단 돌아갈 수 있는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그냥 여기서 아무것도 못 하고 굶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 1년이다. 휴학기간은 1년이다.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다.
나는 길을 향해 발을 땐다.
두렵다. 당연하다. 이렇게 대책 없는 것은 처음이니깐. 6개월 전 나만 해도, 두려움에 전화기를 들고 집에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무언가,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피와 함께 끓는 것이 있었다. 가슴 왼켠에서 두근거리는 것이 있었고, 콩팥 위 어디엔가에서 뿜어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묘한 확신이다.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전혀 몰랐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하나, 빈약한 근거를 두고 있는 그 사실 하나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
가슴은 더욱 세게 요동친다.
한 발자국, 걸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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