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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필&단편

[단편] TWO

by Alternative_ 2020.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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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ing(Dreaming)

 

알람은 울리지 않는다.

길고 긴 시험이 끝난 토요일 아침이다.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잠은 그 자체가 신의 축복이다. 뒤척일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로 부시럭거리는 이불과 요. 그 자체로 멈춰 있는 듯한 공기. 나를 위해 조금은 물러나 있는 어스름한 빛. 창문 너머로 어디선가 들리는 알 수 없는 조그마한 소음. 모두가 어울려 내는 오중주는 나만을 위한 인생 최고의 선율이다. 눈을 뜬다. 눈을 다시 감는다. 오랫동안 있는다. 아직 덜 깨어난 뇌는 오감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게으르게 받아들이며 머리뼈 속 -자신의 침대-에서 뭉기적거린다. 다시 눈을 뜬다. 눈을 뜬다는 일이 이리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 동공 속으로 들어오는 빛은, 내 뇌의 상태와 비슷하게, 몽롱한 빛이었다. 그 빛은 신호가 되어 뇌의 게으른 알파파와 어디선가 만나 다시 무아지경이 되고 있었다. 단지 후두엽 어딘가를 간지럽히기만 할 뿐, ‘자극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린다.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빛 대신 친히 시간님이 오셔서 안개로 가득 찬 내 뇌를 청소해준다. 하하. 어제까지만 해도 너는 실재했었다. 동그란 판과 막대기 두개 위에 서서, 찌뿌둥한 나의 몸과 닿은 나의 마음을 채찍질했다. 너는 벽에도, 손목 위에도, 마음 속에도 군림하며 나를 닦달했었다. 하지만 이제 네놈은 무슨 꼴이냐. 내 어디에도 너는 없다. 너의 존재조차 잊는다. 고작 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절대적으로, 아니 상대적으로 어디엔가 존재하는 생색을 내며 나를 황홀경의 상태에서 희열의 상태로 만들 뿐이다. 한동안 너는 억지로 복종하며 휘둘리는 나의 모습에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허나 이제부턴 어림도 없다.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유일한 일은 고작 눈꺼풀을 잠시 뜨는 것이다.

시간에게 절대적 무력감을 주는 상상을 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다. 그래도 그 미련한 놈이 계속 있었던 것인지. 또렷해진다. 부드러웠던 것들에 각이 잡히기 시작한다. 오차가 줄어든다. 형태를 잊고 뇌 안에서 쌓이던 무언가가 다시 의식으로 떠오른다. 마치 조그마한 장난감이 조립되듯이, 내 안의 여러 가지 무형체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전의 그 황홀경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혀 끝에 서 녹아서 사라진 스카치 캔디마냥, 입 안에 감돈다. 그래, 하루를 전부 침대에서 보낼 생각은 아니었으니깐. 아냐, 한번 그렇게 해 볼까? 발칙하면서도 안될 것 없는 생각이 나를 스친다. 아쉽게도, 잠시 동안의 내적 고민 끝에 뇌가 보낸 답장은, 이미 깨어버린 내 정신에게 그걸 진지하게 묻기에는 아직 내 삶이 건강하다는 보고서였다. 꼬투리를 잡기에는 너무나도 타당한 소리였으므로, 나는 사랑스러운 침대를 떠나 일어서기로 했다.

, 하지만 그 전.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있을 때,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나의 왼팔은 아직 침대에서 자기만의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깨워, 탁자 위에 있는 무언가를 집으라고 하였다. 왼팔은 그게 무엇이냐고, 정확이 어디에 있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약간 귀찮아진 나는 알아서 찾으라고 전해주었다. 다행히도, 왼팔은 (만년필과 책갈피, 그리고 안경닦이라는 몇 번의 실패 끝에) 내가 원했던 것을 가져올 수 있었다. 내 폰이었다.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전원버튼을 누른다. 화면이 밝아지고, 몇 개의 알림이 보인다. 그 중에 내가 원하는 알림은없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지문으로 잠금해제를 한다. 카카오톡으로 들어간다. 채팅방 목록에서, 그녀를 찾아낸다.

뭐해 1”

뭐해

거의 몇 초만에, 숫자는 사라졌다. 그리고 대답

걍 있어

나랑 비슷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키보드를 놀린다.

내 집 올래?”

이시간에?

굳이?”

ㅇㅇ

보내고, 잠시 생각한다. 날씨가 좋다. 햇볕이 창을 뚫고 들어온다. 그리 춥지도 않은 포근한 온도다. 나도, 그녀도 적당히 기분이 좋다. 이 나른함을 좀 더 늘이고 싶을 것이다. 짧은 순간동안, 내 머리는 여러 가지 정보를 받아들여 빠르게 처리한다. 그리고 나오는 답.

커피.

내가 커피 내려줄께

진짜?

너 커피 만들줄 알아?”

ㅋㅋㅋ

오면 보여드림

ㅋㅋㅋㅋㅋ

그래

한 삼십분 뒤에 출발

오키오키

폰을 다시 탁자 위에 놓는다. 거울을 보고 있지 않아도 환하게 웃고 있다는 게 근육으로 느껴진다. 시작이었다.

 

Brewing(Giving)

 

초인종 소리가 적막을 흔든다. 물론, 기분 좋게.

문을 열어주었다. 서로 인사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털썩 앉는다. 눈을 보니 아직 덜 깬 듯 하다. 그런데도 바로 왔다니. 조금 미안해졌다. 미안함을, 커피로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찬장을 열고, 커피콩을 꺼냈다.

커피 내리기를 시작한다.

핸드 드립이라는 방식은 참으로 원시적이다. 도구도, 방법도,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당시에서 고작 몇 단계만이 발전되었다. 커피 콩을 볶는다. 곱게 간다. 물로 우린다. 최초의 커피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라봤자 커피 가루를 물에 바로 넣고 끓이냐, 아니면 걸러서 마시느냐의 차이뿐이다. 도구와 기계로 성장해온 인간은 커피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모양이다. 카페에서는 훌륭한 머신을 이용해 빠르게, 그리고 맛있게 커피를 만든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 집의 탁자 위에는 핸드드립 핸드밀과 드리퍼, 서버, 그리고 드립포트가 위퐁당당하게 서 있다.

컵에 꽂혀 있는 계량스푼으로 커피콩을 퍼 낸다. 스푼이 커피콩 속에 박히며, 콩들이 서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낙엽 소리와 돌맹이들이 부딪치는 소리 사이 어디인가에 있는, 매력적인 소리다. 한 스푼 가득을 떠 낸다. 짙은 갈색. 적당한 크기. 벌써부터 코에 들어오는, 자신을 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커피향기. 나는 스푼을 핸드밀 윗부분에 조심스럽게 쏟는다. 콩이 쇠와 맞닿으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또 한 스푼 더. 두 스푼만으로도 미니 핸드밀의 깔대기 부분에 커피콩이 가득 찬다. 한 스푼에 일 인분의 커피. 두 스푼이면 이 인분. 복잡한 세상에 가벼운 공식이다.

핸드밀을 잡는다. 내가 쓰는 핸드밀은 몇 달 전 구입한 일본산. 적당한 가격에 성능은 조화로울 데 그지없다.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면, 날과 날 사이로 커피콩이 들어가, 조금씩 깎인다. 나오는 그라인드 빈의 입자 크기는 핸드밀의 나사를 돌려서 바꿀 수 있다. 더 곱게 갈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커피가 진하게 내려진다. 더 굵게 갈면, 빨리 갈아지지만, 옅은 커피가 내려진다. 깎일 때의 느낌도 핸드밀마다 천차만별이다. 부드럽게, 또는 확실하게, 또는 거칠게. 이 두가지 조합만으로도, 핸드드립 커피는 각양각색의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나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굵기를 찾은 이후에는 바꾸지 않는 경우가 십상이다. 편하니깐.

핸드밀을 돌릴 때 나는 소리는 핸드드립 커피의 두 가지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손잡이를 잡고 꾸준하게, 그리고 천천히 돌리면 콩이 부셔지는 소리가 확연히 들린다. 이 과정과 소리야말로 핸드드립의 대표 심상이다. 사전에 핸드드립을 검색하면, 누가 핸드밀을 돌리고 있는 사진이 있다. 사실 없다. 근데 있어야만 한다. 커피콩이 갈아 사라지는 파괴의 소리이자, 그라인드 빈이 생기는 창조의 과정. 핸드밀에서 나는 소리는 그 둘을 매개하는 중간자이다.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손잡이를 계속 돌리면, 깔대기에 차 있던 콩의 수위는 점점 내려간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다, 마침내 전부 사라진다. 사라지고 나서도 몇 바퀴 동안은 남아있는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 소리도 이윽고 잦아들고, 어느 순간, 손잡이에 걸리던 기분 좋은 마찰은 자취를 감추고 헛돌게 된다. 첫째 하이라이트의 소강이다.

핸드밀을 흔들어, 아직 갈리지 않고 남은 커피콩이 없는지 확실하게 확인한다(가끔씩 쇠와 나무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꼬마들이 있다.). 그 뒤, 핸드밀 아래부분에 있는 서랍을 연다. 안에는, 봉긋하게 쌓여 있는 그라인드 빈이 있다. 약간 거칠고, 조금 큰 것도, 조금 작은 것도 있다. 무작위성의 입자는 자연스럽게, 다같이 서랍에 담겨져 있다. 서랍을 잠시 두고, 다음 단계를 위해 사전 작업을 개시한다. 우선, 전기포트에 물을 조금 넣고, 스위치를 켠다. 그리고 여과지 한 장을 꺼내어 모서리를 두 번 접고, 드리퍼에 끼워 넣어 펼친다. 원뿔 모양의 드리퍼의 안쪽 벽에 여과지가 밀착된다. 이제 이 여과지에 그라인드 빈을 붓는다. 서랍에서 드리퍼로, 그라인드 빈은 조용히 이동한다. 빈이 담긴 드리퍼를 삼각 플라스크 모양의 서버 위에 놓으면 수고로운 사전 작업은 끝이다. 이쯤 되면, 전기포트에 넣은 물은 거의 다 끓는다.

전기포트에서 끓는 물을 드립포트에 넣는다. 드립포트는, 마치 애플에서 만든 것 같은 주전자다. 분명 그냥 주전자와 똑 같은 기능을 한다. 물을 넣고 기울이면 주둥이로 물이 나온다. 그런데 드립 커피를 만들 때 드립포트가 아닌 다른 주전자를 쓰면, 무게중심 때문에 물 조절이 힘들다. 게다가 드립 감성도 50%가량 줄어든다는 예일대학교 논문도 최근 출판되어 있을까. 아무튼 기능에 비해 더럽게 비싼 점까지 애플을 꼭 닮았다. 감성 하나를 위한 희생이다.

드립포트에 물을 붓고, 열기가 빠지기를 조금 기다린 뒤, 포트 덮개를 덮는다. 열을 빼는 이유는, 섭씨 80도 정도가 되어야 가장 맛있는 커피나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귀찮고 가난한 대학생에게 온도계까지 살 여유는 없으므로, 적당적당히 감으로 열기가 조금 빠졌다 싶으면 덮개를 덮으면 된다. 인생은 적당히.

이제, 두 번째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손목에 힘을 약간 준다. 옆으로 비쭉 튀어나와 있는 드립포트의 손잡이를 감싸쥔다. 서서히 들어올린다. 그리고, 세련되게, 단아하게, 우아하게. 그라인드 빈 위에 물을 떨군다. 물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소리없이 낙하하며 그라인드 빈과 만난다. 뜨거운 물은 빈과 만나, 커피를 만들기 위한 최종 연쇄반응을 시작한다. 물은 입자에게서 커피의 영혼을 담아가고, 가스를 그 뒤에 남긴다. 가스는 그라인드 빈 무더기를 부풀려커피 빵을 만든다.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그와 함께 향긋한 냄새도 피어오른다. 강하진 않다. 하지만 분연히 존재하며, 커피의 의미를 드러낸다. 커피는 아래로 내려가며 수없이 많은 입자들을 스치고, 검은 영혼들을 한 데 모아 한 방울씩 서버 바닥으로 떨어진다. 커피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일련의 바쁜 작업들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문득 떠올라 쳐다보니, 폰을 보는 걸 멈추고 내가 커피를 내리는 걸 보고 있었다.

되게 복잡하네.”

그치. 뒷정리도 좀 귀찮고.”

재밌어?”

재밌지. 직접 하나하나 내가 다 하는 거잖아.”

난 귀찮아서 못 할 거 같아그러고는 웃는다. 웃는 모습을 쳐다본다.

행복하다. 느긋하게 창을 빗겨 들어오는 약한 햇빛도, 창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도, 코 속으로 들어오는 향기도,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 소리도, 내 옆에 있는 그녀의 존재도, 미소도, 보이지 않는 인연이라는 끈도. 행복하다. 이 순간이 그리도 좋았다.

 

Drinking(Stranding)

 

작은 컵 두 개를 꺼낸다. 하얗고 매끈한,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커피용 잔이다. 각각에 커피를 조금 -한 두 입 정도- 따른다. 남는 것은 서버에 남겨 오랫동안 따뜻하게 한다. 드립커피는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정석이자, 유일한 길이다. 식으면 쓴맛이 올라와 과하게 나기 십상이다. 잘 내린 커피를 여유 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한 입 정도를 잔에서 마시고, 다시 서버를 기울여 따뜻한 커피를 따라내는 정도의 수고로움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커피에 같이 곁들어 먹을, 영혼의 동반자 로아커 과자도 냉장고에서 꺼낸다. 테이블에 테이블보를 펼치고, 잔과 컵받침, 서버, 그리고 과자를 놓는다. 그녀가 옆에 와서 앉는다.

내가 먼저 맛을 본다. 생각하던 맛이 나왔다. 파나마산의 차분하고 은은한 맛. 로스팅이 오래 되어서 그런지, 약간의 떫은 맛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확실히, 괜찮은 맛이었다.

두 스푼에는 의미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니 핸드밀은 크기 상 한 스푼, 일 인분이 적당하다. 이 인분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갈고 나서 핸드밀 서랍에 담긴 양을 보면 약간은 과하다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두 스푼에서 나오는 소담스러운 양의 그라인드 빈은 그 값어치를 한다. 이 인분의 드립은, 대체로 일 인분보다 진하고 맛있게, 잘 내려진다. 마치 식당에서 대량으로 끓이는 국이 더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인분의 그라인드 빈에서 커피 빵도 더 잘 만들어지고, 물 조절도 쉽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이 인분을 내리긴 힘들다. 양이 너무 많기도 하고, 커피콩도 너무 빨리 사라진다. 이 인분을 위해서는 두 명이 있어야 하는 정직한 시스템이다. 오랜만에 이 인분을 내려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 맛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녀를 불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시는 나를 보고, 그녀도 컵에 입을 대었다. 한 입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감상이 궁금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입 안에서 조금 굴리고 있는 것을 보아, 음미하고 있는 듯 했다.

“……”

“……”

어떤 평가를 내릴까? 아마도 생전 처음 마셔 보는 드립커피일 수도 있는데, 쓰다고, 맛없다곤 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고는 하지 않을까? 으레 그렇듯 적당히 웃으면서, 그러나 약간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고급스럽다, 감성돋는다고 하지 않을까?

나의 창조물, 내 마음의 일부를 갈아 넣은 커피가 그런 평가를 받을 때, 나는 조금씩 슬펐다. 그러나 이해가 가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적당히 넘기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기에. 지구가 태양을 돌 듯 적절한 거리에 있고 싶기 때문에. 그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울한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돌고 있을 무렵,

 

맛있어.”

 

흐려진 눈의 초점을 맞추어 그녀를 본다.

그녀는 싱긋 웃었다.

 

이 인분의 커피는, 일 인분과 일 인분이 아니다. 두 스푼의 콩은 한데 섞여, 함께 갈리고, 같이 내려졌다. 다른 잔에 담겼지만, 그 내용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친구처럼, 마치 연인처럼, 마치 가족처럼, 한데 이어져 있다. 커피 이 인분의 연결. 맛있는 연결. 은은한 연결. 그 연결이 주는 감정을 좇아 그녀를 부르고 커피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커피 만드는 과정 그 자체에만 몰입되어 있던 내가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 앞의 커피는 그 과정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위로하고 있다.

너의 입 속과 그녀의 입 속에는 같은 커피가 있고, 너의 코 속과 그녀의 코 속에는 같은 커피향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그리고 같은 경험. 그들은 연결을 만든다. 끊어질 지언정, 사라질 지언정 잊히지 않는 연결. 그 밧줄의 몇 가닥을 직접 내린 커피가 만들었다.’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도 나를 바라본다.

 

이천십구년십이월십사일 오전열한시삼십이분

멀리서, 새가, 지저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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