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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시

서울에, 눈

by Alternative_ 202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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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던 눈, 서울에 내렸다.

 

키스 해링의 작품을 보고 나온 뒤, 흥인지문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중.

 

휴대폰 매장에서 나오는 체인스모커의 노래를 듣고 중국어로 말하는 행인을 지나치던 중.

 

유난히 회색인 하늘을 느끼고 때가 타 검어진 보도블럭을 보던 중

 

호떡 기름 냄새를 맡고 버스가 지나가며 뱉은 매연냄새에 숨을 잠시 참던 중

 

눈은 서서히 내리면서 땅에 닿았고

쌓이는 양보다 녹는 양이 더 많아

아쉽게도 풍경을 바꾸진 못했다.

 

그래도 눈은 내렸다. 공중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것들은 내 시야를 흐리고, 열 걸음 앞을 잘 못 보이게 하였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 저층건물이 서 있었고, 버스가 움직였고, 드문드문 사람이 걸었다. 눈 내리기 전과 바뀐 건 없는데, 모든 것이 더욱 생동감 있고, 우울하고, 강인하고, 작게 보였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양이 되어, 쏟아지듯이 내려앉으며 여기저기 쌓이기 시작한다. 노래소리는 바람소리에 묻히고, 회색은 흰색으로 바뀌고, 매연냄새는 눈의 냄새에 가려진다.

 

갑자기, 그렇게나 싫었던 거리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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